"왕자님. 식사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문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급한 마음에 챙기던 가방을 그대로 놔둔 채 미리 준비해 놓았던 하늘하늘한 실크 커튼을 열린 창밖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눈 앞이 아찔한 높이에 정신이 혼미해져 왔지만 요코야마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커튼의 자락을 잡아챘다.
요코야마에게 왕궁은 결코 편한 곳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왕자. 그것이 주는 제약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것을 먹는 호화로운 일상이었지만, 사람내음이 느껴지지 않는 성 안은 지나칠 정도로 따분했다. 반드시 이 곳을 빠져나갈 거야. 요코야마는 그렇게 결정했다.
"왕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다시 한번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요코야마의 행동에 속도가 붙는다. 커튼을 꼭 붙든 채 잔뜩 질려있는 얼굴이 마치 길 잃은 고양이 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아래를 내려보았다가는 어찌될지 뻔히 아는 요코야마는 두 눈을 꼭 감고,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이 기회를 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땅을 향해 내려갔다. 흰눈이 발목까지 쌓이는 겨울날. 온 신경이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은 이 살을 에는 추위에도, 한발짝씩 다가오고 있는 자유를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상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지상에 다달아 커튼의 끝자락을 손에서 놓았을 때, 순간 눈을 뜬 요코야마는 자신의 방 안의 왠지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의 무라카미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시선을 피해버린 요코야마는 눈 속에 발을 푹푹 빠뜨리며 필사적으로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하아... 하아..."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올랐다. 살짝 멈추어 숨을 고르고 있자니, 저 멀리서 요코야마를 쫓고 있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젠장. 숨을 마저 채 고르기도 전에 작게 욕을 읊고는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결코 잡히면 안된다는 생각 만이 머릿속에 꽉 메워지고, 쌓인 눈 속에 보기좋게 빠지는 발을 한탄하며.
오랜 시간, 정신없이 뛰다가 발이 엉켜 바닥에 주저 앉았을 때야 요코야마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까만해도 무서운 얼굴로 요코야마를 뒤쫓아오던 병사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고, 처음 본 사람들이 요코야마를 한번씩 쳐다보고 지나갔을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당도한 곳이 한 마을의 광장임을 알 수 있었다.
다소 부산하고 왁자지껄한 광장. 주위에는 여름이라면 시원하게 물을 뿜어대었을 분수대가 자리해 있었고 그 옆에는 눈이 소복히 덮힌 조각상과 여러 개의 벤치가 놓여 있었다. 벤치로 가 앉으니 그저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 매일 피곤한 몸을 내맡기던 자신의 침대가 잠시 그리워졌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급히 나오느라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돈이 될 만한 것도 배를 채울만한 것도 없었기에, 괜히 어깨에 닿는 금발의 머리만을 매만지고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추위에 겉에 걸친 얇은 코트의 옷깃을 여몄다. 좀 더 계획을 단단히 짜볼 걸 그랬나. 돈도 두둑히 챙겨오고. 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계획은 조금 엉성했다 할지라도, 결과는 바라던 대로 되었으니까.
"아취-"
어느새 누워버린 자세가 된 요코야마는 기침을 크게 한번 했다. 아마도 감기가 든 모양이었다. 원래 몸이 약한 체질이라 성 안에서도 갖은 병치레를 해왔던 요코야마는 급경히 하강하는 체온을 지키기 위해 몸을 한껏 움츠렸다. 손목에 감긴 은색체인의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미시(未時).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요코야마는, 배꼽시계가 미친듯 요동쳐대고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은 그렇다 쳐도, 그 추위 속에서 밀려오는 잠은 정말로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잠이 들면 어떻게 될런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쳐댔지만 어느새 빠른 속도로 감겨오는 눈꺼풀은 요코야마를 공포에 떨게 했다.
안돼. 잠들면 안돼. 그렇게 스스로 주문을 걸어봤지만, 느껴지는 건 빳빳하게 굳어가는 몸과 계속해서 감기는 두눈 뿐.
"어이, 이봐. 괜찮아?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제 몸에 닿는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자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을 느낀다. 요코야마는 마지막 순간의 그의모습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신비로운 갈색의 눈동자. 폭신폭신하게 배어나는 불가리향.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가 자신의 앞에 있기를 빌며 요코야마는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남자의 정체는 원래 용사였던 타다요시
제목은 웃으라고 지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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